Souvenirs without Monuments
HYPERSPANDREL
28 October - 11 November, 2022
기획의 글
<기념비 없는 기념품>
[기념비: 어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]
[기념품: 어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물체]
“기념비 없는 기념품”은 떠돌이 신진 건축가의 팝업 플래그십 보따리상이다. 이는 하이퍼스팬드럴이 지난 활동을 바탕으로 생겨난 건축물의 본질과 건축적 소비에 대한 #고뇌, #짜릿함, #반항심, #희열, #스트레스들을 표출하는 기념품들이다.
전시장 속 널브러진 물건들은 마치 보따리 상인의 좌판에 놓인 잡동사니 같아 보이고, 벽에 걸려있는 액자 속 경력 들은 먹자골목 국밥집의 간판들을 연상시키고, 또한 한편에 자리 잡은 창덕궁을 개발한다는 팻말은 분양 사기극을 떠올리게 해 경계심을 유발한다. 게다가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메아리 같은 저 돌림노래는 또 뭐지…? 이런 실태 없어 보이는 잡동사니들은, 일종의 발버둥이면서도, 건축물이 건물이 아닌 더 다양한, 심지어 가상의, 매체로 대체됐을 때 가능한 건축적 행위와 소비 방식을 상상해 본다. 이 개념의 논리 구상은 다음과 같다: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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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념품과 기념비의 구분은 생각보다 모호하다. 기념품과 기념비의 차이는 물체의 크기인가? 전시장에 놓인 미니어처 에펠탑을 카메라로 찍어보자. 잘만 찍으면 당신이 파리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찍을 수 있을 것이다. 건축가가 모형을 만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. 도면과 모형 등으로 충분히 건물의 경험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. 이러한 복제품들이 충분히 에펠탑의 경험을 재현할 수 있다면, 잡상인들이 파는 싸구려 플라스틱 모형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? 크기에서 나오는 특유의 속성은 있겠다만, 건물은 거대한 인형의 집과 같은 또 다른 기념품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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크기가 기준이 아니라면, 기념품과 원형의 차이인가? 잡상인이 파는 싸구려 에펠탑 모형은 건물이 지어진 후 제작된 “짭”이기 때문에 기념품으로 정의된다. 그런데 건축가가 만드는 모형은 건물이 지어지기 전 제작됐지만, 마찬가지로 건물이 지어져야만 가치가 생긴다. 에펠탑이 없었으면 기념품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, 건축가의 모형도 건물이 지어지지 않으면 그저 이루어지지 않은 과정의 일부로 사라진다. 순서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. 웃기게도, 저명한 건물이 지어지면 결국 기념품 샵에선 건축가의 모형을 본 딴 키 체인과 도면집 포스터가 기념품으로 판매한다. 이 불필요한 과정을 왜 거치는 걸까? 애초에 개념이 중요하고, 결국 결과물이 기념품이라면, 건물은 생략하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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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발상의 배경엔 아무리 계산을 두드려봐도 #수지타산이 도저히 맞지 않는 이 시대의 건축적 강박관념, 즉, “건물이 지어지고 경험할 수 있어야만 타당하다”라는 고집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비롯되었다. 정녕 건물을 직접 짓고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몇이나 될까? 주위에 수많은 이들에게 “나 돈 많이 벌면 내 집 지어줘!”라는 얘기를 벌써 수십 번 들었는데, 실제로 부탁한 사람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다… 적어도 이전 세대의 건축가들의 초창기 시절을 돌이켜보면, 부모님의 집이라도 먼저 지으면서 자신의 건축세계를 펼쳐 나갔는데, 우리들의 부모님은 은퇴 후 치킨집에 투자하시느라 아직 전세로 살고 계셔서 그럴 여유는 없을 듯. 천문학적인 시간, 노동력, 비용이 들어가는 건물은 극소수만이 범접할 수 있는 매개체로 변질돼버렸다. 그렇다면 이 고전적 고집에서 탈피하는 것은 마땅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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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원전 1세기경 건축에 대한 개념을 처음 정의한 비트리비우스는(Vitruvius), #견고함, #유용함, #즐거움이라는 3대 요소로 건축의 본질을 정의했다. 그의 정의에서도 건물에 대한 집착보다 지향해야 되는 가치로 여겨진다. 그렇다면 망고도, 효자손도 견고하고, 유용하고, 즐거운 합당한 건축물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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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초에 건축적 개념을 건물로만 단정 짓기엔 매우 제한적이다. 르코르뷔제(Le Corbusier)의 거대한 세계관을 그의 글, 그림, 가구, 도면, 도시계획들은 배제한 체, 그가 실제로 완공한 건물만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. 건물을 전혀 짓지 않은 슈퍼스튜디오(SUPERSTUDIO)나 아키줌(ARCHIZOOM)같은 건축가들은 콜라주, 잡지, 만화, 쿠션, 재떨이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건축적 개념들을 설파했다. 그들은 실체 없는 “종이 건축”(paper architecture)라고 조롱 당했지만, 그들의 개념은 웬만한 건물보다 더 파급적인 영향을 주었다.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재떨이 하나라도 그들에겐 자신들의 거대한 건축적 세계관을 함축하는 물체, 즉, “기념품”이었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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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21세기의 잡동사니”라고 부를 수 있는 기념품은 웅장하고 영원할 것 같은 건물에 비해 가볍고, 대량생산되고, 소모적이며, 솔직히 하찮다. 그러나 건물은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매우 제약적인 것에 반면, 기념품은 시공을 초월하며 쉽게 전파되는 “밈”적 도구이다. 심지어 동두천의 아무개 카페에도 에펠탑이 있다. 끊임없는 복제와 살포를 통한 피할 수 없는 주입식 노출 효과를 지닌 기념품의 속성은 마치 거대한 건물의 존재감과 동일한 몰입감과 비슷하지 않을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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건축물이 건물을 넘어선 개념만으로도 존재한다는 이 논리 선상의 끝에서, 당신은 얼마나 가상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가? 이 전시는 궁극적으로 건축을 실물이 아닌, 개념으로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관을 실질적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에 대한 도전적 실험이다. 이미 실체와 허상이 구분하기 의미 없어진 다중 현실의 세상 속, 건축물의 경계를 어디까지 수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가? 건물이 아닌 도면집을 소비할 수 있는가? 그렇다면 티셔츠는? 양말은? 망고는? CM송은? 영수증은? 허위매물은?
<건축적 소비에 대한 실험>
1. 난이도 하. #하이퍼상술 티셔츠 (SOUVENIR T_SHIRT)
전시 오프닝을 기원하며 좌판에 놓여진 제품 중 유일하게 직접 실물을 가져갈 수 있는 제품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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티셔츠의 가격은 스페셜 할인으로 원가 300,000원에서 80프로 할인된 45,000원으로 판매 중이며, 갯수는 총 100개의 한정품으로 판매합니다. 단, 재고의 반은 공식적 “짭”이고, 반은 공식적 “찐”이며, 랜덤으로 배포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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티셔츠 대신 내역 영수증을 별도로 10,000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. 영수증은 본인이 구매했다는 사실증명을 스탬프로 낙인됩니다. 영수증도 마찬가지로 100장의 한정판매를 진행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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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물을 선택할 시에는, 영수증을 받아갈 수 없습니다. 마찬가지로 영수증을 구입하면 티셔츠는 받아갈 수 없습니다.
2. 난이도 중. 좌판 내역 영수증 (VISITOR’S RECEIPT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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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상의 건축적 소비를 예행해봅시다. 좌판에 놓여진 물품들을 자유롭게 집어보고 살펴보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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테이블 위에 놓여진 영수증이 본인이 탐나는 물체를 원하는 만큼 정하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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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THE PURE FLEX” 를 정할 경우에는 그 항목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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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수증의 가격은 10,000원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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축하합니다! 이제 당신은 선택한 품목을 구입한거나 마찬가지입니다. 자랑스럽게 영수증을 소지하세요!
3. 난이도 상. 더 창덕 아파트 초기 로얄층 분양권 (PURCHASE AGREEMENT)
전시 오프닝을 기원하며 하이퍼스팬드럴의 차기 프로젝트인 더 창덕의 로얄층을 초기 분양합니다.
더 창덕은 실거주로 사용되지 않는 서울 한복판의 노른자위 땅을 개발해 진행하는 초특급 주거 프로젝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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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양권의 실존 감정 판매가는 500억원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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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시에서 판매되는 분양권의 가격은 10,000원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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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위매물일 수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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축하합니다! 서류상으로는 당신은 이제 더 창덕궁의 입주예정자 입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