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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의 기록 박세미
이제 우리, 물로서 도시에 흘러들어 갑시다
도시로 입장하는 문으로서 지붕은
미
끄
럽
게
우리를 반겨줄 것입니다
지붕에서부터 우리는 갈라지고 갈라져
도시의 구석구석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
깜깜한 원형의 터널을 끝없이 지나고 있습니다
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 하는 터널에서
물의 공동체가 겪는 이별과 만남은
절대로 한 방향입니다
세찬 울음도
가만한 호흡도
오로지 앞을 향합니다
맨홀이 들썩거린다면,
물의 시위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
지하에 감금되었던 것들이 곧 해방될 것입니다
사라졌다고 믿었던 온갖 거짓말과 악행들이
물의 힘을 빌려 도시에 구멍을 낼 것입니다
물의 침묵을 언제나 두려워하십시오
도시에도 장기가 있다면, 이곳은
신장, 이곳에서 저는
열흘 째 머물고 있습니다
온갖 영웅담과 신세한탄이 대류하며 뒤섞이고
죽음과 탄생이 자리를 바꾸는 이곳에서
그저 기도를 드릴 뿐입니다
슬픔의 몸 하나가 담긴 욕조로 나를 인도하소서…
하나의 상수도 가압장이 거느리는 수도꼭지가
총 몇 개나 되는지,
수도꼭지가 사람을 거느리는 것인지,
사람이 도시를 거느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,
샤워기 아래 한 사람의 고독이 공중에 뿌려질 때,
그것이 동전 크기의 하수구로
졸졸졸 흘러갈 때,
욕실의 커튼과
거울에는
가장 사적인 물의 기록이 새겨집니다
나의 이동 좌표를 추적하십시오
도시의 지붕에서 당신의 눈물까지 이르도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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